로마의 수도 시설은 높은 다리 위로 물길을 이어 가기도 했고, 닫힌 관을 골짜기 아래로 내렸다가 반대편으로 올리기도 했습니다. 두 경우 모두 기본 동력은 높은 곳의 물이 가진 에너지입니다. 다만 아치 위의 수로와 압력관은 물이 흐르는 조건이 서로 다릅니다.
수도교 사진에서 눈에 띄는 아치는 물을 위로 밀어 올리는 장치가 아닙니다. 주변 땅이 낮아져도 필요한 높이에서 물길을 이어 갈 수 있게 받쳐 주는 구조물입니다.
물길을 높게 유지하는 방법과, 낮게 내려보내는 방법
비트루비우스의 《건축십서》8권 5~6장은 물을 옮기기 위한 수준 측정과 수로·관을 설명합니다. 특히 긴 골짜기에서 관을 아래로 내리고, 바닥 구간을 지난 뒤 반대쪽 경사면으로 올리는 설명이 나옵니다.
| 개수로를 받치는 수도교 | 물이 가득 찬 압력관 |
|---|---|
| 물 표면이 공기와 접촉한 채 흐름 | 관이 물로 차고 내부 압력이 작용 |
| 다리로 물길의 높이를 유지 | 관이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갈 수 있음 |
| 완만한 흐름을 유지할 경사가 중요 | 입구·출구 수위 차와 손실, 관의 내압이 중요 |
골짜기로 내려가는 압력관 방식을 보통 ‘역사이펀’이라고 부릅니다. 리옹의 지에르 수도교 사이펀 연구는 실제 수도 시설에서 이런 골짜기 횡단을 다룹니다. 그러므로 로마인은 물이 조금이라도 올라가야 하는 구간에서는 반드시 펌프를 썼다는 설명은 맞지 않습니다.
반대로 닫힌 관만 있으면 어떤 언덕이든 넘을 수 있다는 설명도 틀립니다. 출발 쪽에서 사용할 수 있는 높이 차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면 물은 원하는 출구로 계속 흐를 수 없습니다.
출발 수위 100m, 도착 수위 95m라면
원리를 보기 위해 두 저수조의 물 표면 높이를 같은 기준으로 재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출발 저수조는 100m, 도착 저수조는 95m이고, 그 사이 관의 가장 낮은 부분은 60m입니다. 관은 물로 차 있으며 두 저수조 표면에는 같은 대기압이 작용합니다. 이 숫자는 특정 유적의 실측값이 아닙니다.
출발 물 표면 100m
↓ 관을 따라 하강
골짜기 아래 관 60m
↑ 관을 따라 상승
도착 물 표면 95m

관은 바닥에서 도착 저수조까지 35m 올라갑니다. 하지만 전체 경로의 끝은 시작보다 5m 낮습니다. 도중에 낮아지며 높아진 관내 압력이 상승 구간의 흐름을 가능하게 합니다. 여기서 ‘중간에 올라가는 구간이 있다’와 ‘물이 출발 수위보다 더 높은 곳으로 계속 공급된다’는 전혀 다른 주장입니다.
단순한 저수조 간 흐름에서는 이 5m의 수위 차가 관 마찰과 굽이·출입구 등에서 생기는 손실을 감당합니다. 어떤 유량을 흘릴 때 계산되는 전체 손실이 6m라면, 5m의 수위 차만으로 그 유량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실제 유량은 손실과 사용 가능한 수두가 맞는 조건으로 정해집니다.
즉 ‘도착지가 출발지보다 낮다’는 것은 중요하지만, 원하는 만큼의 물이 나온다는 보장은 아닙니다. 관의 길이와 굵기, 거친 정도, 굽은 부분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아래로 많이 내려갈수록 생기는 새로운 부담
그렇다면 관을 골짜기 바닥으로 더 깊이 내릴수록 물이 더 세게 나올까요? 출발·도착 수위가 그대로라면 전체 흐름에 제공되는 높이 차는 여전히 5m입니다. 깊어진 바닥은 오히려 관이 견뎌야 할 압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앞의 장치에서 도착 쪽을 닫아 흐름을 멈추고, 출발 저수조와 바닥 관이 연결된 상태를 생각하겠습니다. 바닥은 출발 물 표면보다 40m 아래입니다. 물의 밀도를 1,000kg/m³, 중력가속도를 9.8m/s²로 두면 대기압을 뺀 정수압은 다음과 같습니다.
압력 = 밀도 × 중력가속도 × 깊이 1,000 × 9.8 × 40 = 392,000Pa ≈ 0.392MPa
이것은 멈춘 물에 대한 단순 계산입니다. 흐르는 물의 압력과 급격한 유량 변화에서 생기는 압력까지 그대로 나타내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수위 차로 물을 보낼 수 있는가’와 ‘관과 이음부가 버티는가’가 서로 다른 설계 질문이라는 점은 드러납니다.
비트루비우스의 납관은 얼마나 깊은 골짜기를 견뎠을까
비트루비우스는 《건축십서》 8권 6장에서 납관의 규격을 관을 말기 전 납판의 너비(디기투스, 손가락 폭)로 부르고, 10피트 한 토막의 무게를 적었습니다. 100디기투스 관은 1,200리브라, 50디기투스는 600리브라, 5디기투스는 60리브라처럼, 무게가 언제나 너비의 12배입니다.
이 비례를 현대 단위로 풀면 흥미로운 사실이 나옵니다. 1디기투스 18.5mm, 1리브라 327.5g, 1피트 29.6cm, 납 밀도 11,340kg/m³로 계산하면 모든 규격의 납판 두께가 약 6.3mm로 같습니다. 두께는 그대로인데 관만 굵어지는 셈입니다. 관 벽에 걸리는 힘은 지름에 비례하므로, 굵은 관일수록 같은 수압에서 더 큰 응력을 받습니다.
| 납판 너비 | 관 지름(약) | 10피트 무게 | 터지기 시작할 깊이(계산) |
|---|---|---|---|
| 5디기투스 | 2.9cm | 60리브라 (약 20kg) | 약 657m |
| 10디기투스 | 5.9cm | 120리브라 (약 39kg) | 약 329m |
| 20디기투스 | 11.8cm | 240리브라 (약 79kg) | 약 164m |
| 50디기투스 | 29.4cm | 600리브라 (약 197kg) | 약 66m |
| 100디기투스 | 58.9cm | 1,200리브라 (약 393kg) | 약 33m |

실제 유적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위키백과 영문판의 페르가몬 항목은 마드라다으 수도가 깊이 약 200m의 골짜기를 건너며 납관에 물기둥 200m의 압력이 걸렸다고 설명합니다. 약 19.6기압입니다. 위 계산으로는 지름 9cm 남짓(15디기투스) 이하의 관이어야 그 압력을 겨우 견딥니다. 반면 리옹 지에르 수도의 가롱 사이펀은 21m를 내려갔다 올라오므로 약 2기압이고, 이 정도면 굵은 관도 버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깊은 골짜기에서는 굵은 관 하나 대신 가는 관 여러 개를 나란히 까는 편이 유리합니다. 지에르 수도의 사이펀이 ‘나란히 놓인 여러 개의 납관’으로 설명되는 것도 같은 방향입니다. 비트루비우스가 골짜기 바닥을 길게 수평으로 받치고(벤테르), 공기 빼는 관을 세우라고 당부한 것도 압력과 충격이 가장 큰 곳을 다루는 방법이었습니다.
수도교는 아치의 높이보다 물의 경로로 읽습니다
골짜기를 돌아가는 길은 길어질 수 있고, 아치로 건너는 길은 큰 구조물이 필요하며, 압력관으로 건너는 길은 관과 접합부에 부담을 줍니다. 서로 다른 비용과 지형 조건을 가진 해법이므로 하나가 언제나 정답은 아닙니다.
로마 수도 시설의 원리를 보려면 세 가지를 따져 보면 됩니다. 물 표면이 드러난 수로인지, 물로 가득 찬 관인지, 그리고 출발과 도착의 물 높이가 어떠한지입니다. 그다음 손실과 구조물의 한계를 보아야 합니다. 높은 아치만 바라볼 때보다, 물이 내려갔다 다시 올라오는 구간까지 훨씬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계산 방법과 참고 자료
압력은 밀도 × 중력가속도 × 깊이, 관 벽의 응력은 압력 × 지름 ÷ (2 × 두께)로 계산했습니다. 고대 단위의 길이와 납의 강도는 위에 적은 가정값이며, 실제 관의 이음매·순도·노후 상태는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 Vitruvius, 《건축십서》 8권 (LacusCurtius 영역): 납관 규격과 무게, 벤테르와 공기관
- Persée, 리옹 지에르 수도교 사이펀 연구: 실제 역사이펀 사례
- Pergamon (위키백과 영문): 마드라다으 수도와 200m 압력관
- Gier aqueduct (위키백과 영문): 가롱 사이펀 21m, 나란히 놓인 납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