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마(groma)의 핵심은 땅 위에서 두 방향을 재는 것이 아니라, 서로 직각인 두 시준선을 만들어 내는 데 있었습니다. 십자대 끝에 매달린 추선 두 개를 한 줄로 겹쳐 보며 말뚝의 위치를 잡고, 그와 직각을 이루는 다른 추선 쌍을 이용해 두 번째 방향을 정하는 방식입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한계가 하나 있습니다. 그로마가 직각을 만들어 준다고 해서 그 한쪽 선이 자동으로 북쪽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직각을 정하는 일과 방위를 정하는 일은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그로마는 어떤 정보를 주는 도구였을까?
케임브리지대학교 출판부에서 출간된 M. J. T. Lewis의 고대 측량기구 연구는 그로마의 기능을 직선과 직각을 시준해 설정하는 데 한정합니다. 도시·군영·토지 구획처럼 직교 격자가 필요한 곳에서 유용했지만, 높낮이를 재는 수준기와 같은 역할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탈리아 피렌체 갈릴레오 박물관(Museo Galileo)의 1999년 3D 복원 설명을 보면 그로마는 지지대, 회전 팔, 그 위의 십자대로 구성됩니다. 십자대 네 끝에서는 네 개의 추선이 아래로 늘어집니다. 이 네 줄의 지면 투영이 방향 좌표를 만들고, 측량사는 그 방향을 따라 말뚝을 일렬로 세울 수 있었습니다.
| 부품 | 역할 | 독자가 주의할 점 |
|---|---|---|
| 지지대 | 기구 전체를 세움 | 수직 상태가 흐트러지면 시준도 흔들림 |
| 회전 팔 | 십자대 전체 방향을 돌림 | 직각 자체와 전체 방위는 별개 |
| 십자대 | 서로 직교하는 두 축을 제공 | 복원에서 팔의 교차각이 정확해야 함 |
| 추선 4개 | 두 쌍의 시준선을 만듦 | 바람·진동이 있으면 줄이 흔들림 |
| 말뚝 | 시준 방향을 실제 땅에 옮김 | 기구가 방향을 주고, 선을 남기는 작업은 별도 |
두 개의 추선을 겹쳐 보면 왜 직선이 생길까?
정면에서 추선 하나만 보면 단지 한 점에 가까운 기준밖에 얻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서로 마주 보는 두 끝의 추선을 눈앞에서 정확히 겹치도록 위치를 잡으면, 두 추선이 놓인 방향과 같은 시준선이 생깁니다. 그 연장선 위에 말뚝을 세우면 한 방향의 직선을 땅에 옮길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을 십자대의 다른 추선 쌍에서도 반복합니다. 십자대의 두 축이 90도로 교차하도록 만들어졌다면, 첫 번째 시준선과 두 번째 시준선도 서로 직각인 방향을 제공합니다.
위에서 본 개념도
추선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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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선 C ─────┼───── 추선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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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선 A
A-B를 겹쳐 보는 방향과
C-D를 겹쳐 보는 방향이 서로 직각
중요한 점은 측량사가 ‘90도’라는 숫자를 눈금에서 읽는 방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구에 이미 만들어 둔 직교 구조를 시준선으로 복사해 땅 위에 옮기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직각이 맞으면 북쪽도 자동으로 정해질까?
아닙니다. 이 차이는 그로마를 이해할 때 가장 유용한 반례입니다.
십자대의 한 축이 어떤 기준에서 0도, 다른 축이 90도를 향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두 축은 분명 직각입니다. 이제 기구 전체를 23도 돌리면 두 축은 23도와 113도를 향합니다. 두 방향의 차이는 여전히 90도입니다.
회전 전: 0°와 90° → 차이 90°
회전 후: 23°와 113° → 차이 90°

즉 그로마가 보존하는 것은 두 방향 사이의 상대적인 직교 관계입니다. 어느 방향을 북쪽이나 도로의 기준선으로 삼을지는 다른 관측이나 이미 정해진 기준점이 필요합니다. 직각 측정과 방위 결정은 같은 작업이 아닙니다.
폼페이에서 발견된 부품은 무엇을 말해 줄까?
그로마의 완전한 목재 원형이 통째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1912년 폼페이에서 철·청동 부품들이 발견됐고, Matteo Della Corte가 이를 바탕으로 복원안을 제시했습니다. 이탈리아 백과사전 트레카니(Treccani)의 1933년 항목은 이 발견과 복원 과정을 자세히 소개합니다.
따라서 오늘날 박물관에서 보는 복원품은 고대 유물을 그대로 세워 둔 물건이 아니라, 남아 있는 금속 부품·도상·문헌을 결합해 사라진 목재 부분을 보완한 재구성입니다. 갈릴레오 박물관 페이지도 1999년 제작된 3D 복원임을 명시합니다.
실제 측량에서는 무엇이 오차를 만들었을까?
- 추선의 흔들림: 바람이나 움직임이 있으면 두 줄을 안정적으로 겹쳐 보기 어렵습니다.
- 십자대의 제작 오차: 두 축 자체가 정확히 직교하지 않으면 그 오차가 그대로 땅에 복사됩니다.
- 관측자의 위치: 눈의 위치가 시준선에서 벗어나면 두 추선이 겹쳐 보이는 조건이 달라집니다.
- 말뚝 정렬: 시준 방향을 정확히 얻어도 실제 말뚝을 그 선 위에 옮기는 과정에서 추가 오차가 생길 수 있습니다.
다만 남아 있는 자료만으로 ‘로마 측량사는 평균 몇 도의 오차를 냈다’와 같은 보편적인 수치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기구의 원리는 설명할 수 있지만 실제 정밀도는 제작 상태·거리·지형·관측 조건에 따라 달라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1mm의 겹침 오차는 710m 구획에서 얼마나 커질까
로마의 토지 구획(켄투리아)은 흔히 한 변 20악투스, 곧 2,400로마피트로 나뉘었습니다. 1피트를 29.6cm로 잡으면 약 710m입니다. 그로마의 추선 두 줄이 1m 떨어져 있다고 가정하고, 측량사가 두 줄을 겹쳐 보는 데서 생기는 작은 어긋남이 이 크기의 구획 끝에서 얼마나 커지는지 계산했습니다.

겹쳐 보는 오차 1mm는 각도로 0.057°에 불과하지만, 710m를 나아가면 옆으로 약 0.71m 벗어납니다. 2mm면 1.42m, 5mm면 3.55m입니다. 바람에 추선이 몇 밀리미터만 흔들려도 구획 모서리가 미터 단위로 어긋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추선 사이가 길수록 같은 겹침 오차가 만드는 각도 오차는 줄어듭니다.
이런 오차는 어떻게 알아챌 수 있었을까요? 정사각형이라면 두 대각선의 길이가 같아야 합니다. 계산해 보면 한 변 710m 구획에서 모서리 각이 0.057° 틀어지면 두 대각선의 길이 차가 약 1.0m 생깁니다. 공교롭게도 이 조건에서는 ‘겹침 오차(mm)’와 ‘두 대각선 차(m)’가 거의 같은 숫자로 나옵니다. 측량사가 실제로 대각선을 재어 확인했는지는 이 계산으로 알 수 없지만, 큰 구획일수록 작은 각도 오차가 줄자로 잴 수 있는 크기로 드러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로마의 핵심은 각도를 읽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복사하는 데 있었다
그로마는 현대의 디지털 각도계처럼 화면에 90.00도를 표시하는 기계가 아니었습니다. 서로 직각으로 만든 십자대와 네 개의 추선을 이용해 두 시준선을 만들고, 그 방향을 말뚝으로 땅에 옮기는 장치였습니다.
이 원리를 이해하면 ‘직각을 잡았다’와 ‘북쪽을 찾았다’를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로마가 직접 제공하는 것은 두 방향의 직교 관계이며, 그 직교 틀을 어느 방위에 놓을지는 별도의 기준이 필요했습니다.
계산 방법과 참고 자료
각도 오차 = arctan(겹침 오차 ÷ 추선 간격), 구획 끝의 어긋남 = 710.4m × tan(각도 오차)로 계산했습니다. 추선 간격 1m는 설명을 위한 가정입니다.
- M. J. T. Lewis, 《Surveying Instruments of Greece and Rome》 Groma 장: 그로마의 기능
- Museo Galileo, Groma: 1999년 3D 복원
- Treccani, Groma (1933): 폼페이 출토 부품과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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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Museo Galileo, “2.4 Groma (Surveyor’s cross)”: 1999년 3D 복원, 십자대·추선·말뚝 정렬 설명
- M. J. T. Lewis, Surveying Instruments of Greece and Rome, Chapter 5 “The groma”: 직선·직각 설정이라는 기능 범위
- Treccani, Matteo Della Corte, “Groma”: 1912년 폼페이 출토 부품과 복원 기록



